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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이란

숫자에 갇힌 날들

숫자에 갇힌 날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창밖의 날씨를 확인하는 것이 아니라, 스마트폰 화면 속의 숫자를 확인하는 것이었다. 밤사이 미국 증시는 어떻게 마감되었는지, 내 주식 계좌의 수익률은 붉은색인지 푸른색인지, 암호화폐의 등락 폭은 얼마나 되는지. 화면 속 숫자의 색깔과 크기에 따라 그날 하루의 기분이 결정되었다. 붉은색 상승 기호가 보이면 커피 한 잔의 여유를 누릴 자격이 있는 것 같아 어깨가 펴졌고, 푸른색 하락 기호가 보이면 하루 종일 무언가에 쫓기는 듯한 불안감에 시달려야 했다. 언제부터 내 삶의 주도권이 이 무미건조한 아라비아 숫자들에게 넘어가 버린 것일까.

 

 

우리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숫자로 평가받는다. 태어난 시간, 몸무게, 학창 시절의 등수, 그리고 어른이 되어서는 연봉과 아파트 평수, 통장 잔고라는 숫자에 끊임없이 갇혀 살아간다. 돈이라는 것은 본래 물건의 가치를 매기고 교환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했지만, 어느새 우리 자신의 가치마저 매겨버리는 절대적인 척도가 되어버렸다. 통장에 찍힌 동그라미의 개수가 내 행복의 크기를 보장해 줄 것이라는 굳건한 믿음 아래, 나는 매일 밤낮으로 숫자를 늘리는 데에만 혈안이 되어 있었다. 친구를 만나 밥을 먹을 때도 이 식사 자리가 내게 남기는 '가성비'를 따졌고, 취미 생활을 할 때도 이것이 훗날 '돈'이 될 수 있을지 없을지를 먼저 계산했다. 모든 시간과 에너지가 숫자로 치환되는 삶이었다.

하지만 숫자는 본질적으로 무한하다. 100만 원이 모이면 1000만 원을 원하게 되고, 1억이 모이면 10억을 좇게 된다. 끝이 없는 숫자의 사다리를 오르며 나는 점점 더 지쳐갔다. 숫자에 집착할수록 역설적으로 내 삶의 질감은 앙상해져만 갔다. 계절이 바뀌는 냄새, 길가에 핀 꽃의 색깔, 사랑하는 사람과 눈을 맞추며 나누는 온기. 이런 것들은 숫자로 측정할 수 없다는 이유로 내 삶에서 철저히 소외되고 배제되었다. 오늘, 나는 과감히 스마트폰 전원을 끄고 창문을 열었다. 차가운 바람이 얼굴을 스치고 지나간다. 수익률 0%의 무용한 시간. 그러나 이 숫자로 환산할 수 없는 고요함 속에서 나는 비로소 내가 살아숨쉬고 있음을 온전히 느낀다. 숫자의 감옥에서 문을 열고 나서는 첫걸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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